[구입도서] 설문해자신해 B.o.o.k. - 추천책


네이버 책소개
『설문해자신해: 540부수 절운 총색』은 한자어 교육을 위하여 540부수의 글꼴을 풀이하고 한자에 관한 의문을 파헤친 책이다. 한 일부터 임금 왕, 오이 과, 바꿀 역, 돼지 해까지 다양한 한자들을 상세하게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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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휴..
간만에 포스팅하네.
이제껏 보았던 영화들도 너무 많아 정리하지 못하겠고;
시험준비도 꾸준히 않고 한달만 공부한 후
후딱 지난주 일요일 즉 2012년 3월 18일에 치룬 신hsk 6급 하며..
어쨌든 포스팅하게 만드는 새로 산 도서가 있어서...ㅠㅠ


돈 아까운 책..
아 반품비가 더 아깝다.
무려 오천원이나 깎이네.
장장 거금을 들여 샀는데..ㅠㅠ
이건 뭐..
자세한 설명이 아니라..
그냥 중국 사이트를 돌다보면 짜집기 할 수 있는 설문이나
강희자전의 내용을 모두 캡쳐해서 만든 책인 것 같다.
나도 만들 수 있겠다..ㅠㅠ
너무했다.
너무 바란것일까.

그나마.. 요번에 설문 관련해서 써낸 도서 중에
'한눈에 보이는 설문한자창'은 참 양심적이다.
그래도 가르쳐오고 공부한 부분을 설명하며 풀이해주신다.
또한 갑골문과 금문과의 비교도 간혹 보인다.
(참조로 설문은 상, 하권으로 나온 상태이고, '한눈에 보이는 한자창'을 출간한 상태다.
그리고 눈으로 전서체의 아름다움을 잘 살리어 주시는 금하연 님의 도서도 훨씬 양호하다.

앞으로 좀 더 심도 깊게 설문 전체를 번역한 본이 있었으면 좋겠고..
또한 허신 선생님께서 지으신 그전의 때에..
해석되어졌던 경서들의 내용..
그리고 그 후 당나라 송나라를 거치며 재해석된 문자.
또 갑골문 후의 재의미 해석..
전체로 학문해야 할 범위가 아주 턱턱 막힐 듯하겠지만.
일단 경학을 먼저 파서..
대강 문자들의 의미가 쓰이는 바를 두루두루 구경부터 해야겠다.
요즘 그나마 짬짬이 하나씩 시간날 때 듣는 건..
몇년 전.. 멋도 모르고 구입한 '당한해자'라는 게 있었는데..
난 그게 당나라 한나라에서 풀이한 문자도서인줄 알았다 ㅎㅎ
그런데 이렇게 어떻게 검색을 하다가..
우연히도?? 그때의 저자분 강의가 몇편 올라왔다.
바이두 쓰핀에서 보면 아주 수월하다.
허나.. 이분은 갑골문 위주로 이야기를 진행하기에..
일단 재미로 듣는다고 해도 괜찮을 듯.


요즘 또 꽤 재미난 것이라면 현장 서유기, 삼자경을 강의하신 전문충 교수의 솔솔한 이야기.
'문중유화' 프로그램을 검색해도 되겠다.
요것도 이런 식으로 쳐서 검색하면 바로 들을 수 있을 듯.
우연히 논어에 대한 이야기, 상가구.. 관련 이야기를 찾다가 들은 내용이 꽤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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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궁 [ 芹宮 ] 동양학/상식백과


근궁 [ 芹宮 ]
문묘(文廟)의 별칭. 곧 성균관(成均館)을 가리킴. 옛날 제후(諸侯)의 학궁(學宮)을 반궁(泮宮)이라 하였는데, 그 반궁의 물인 반수(泮水)에 미나리[芹]를 심었던 까닭에 생긴 별칭. 국학(國學). 근조(芹藻). 반궁(泮宮). 태학(太學). 현관(賢關). 성균관(成均館).

용례성균관 생원 허형 등 65인이 상소하기를, “…그러나 말할 만한 일이 있으면 비록 공상의 천한 무리라도 오히려 말 할 수 있는데, 하물며 신 등은 근궁에서 학문을 배우면서 교육의 은혜를 입었으나 한 가지의 바른 의논을 올려서 조그마한 도움이라도 나타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였다. ; 成均生員許衡等六十五人 上疏曰…然事有可言者 雖工商之賤 猶得言之 況臣等 藏修芹宮 恩霑敎育 可不進一讜論 以效絲毫之補… [성종실록 권제105, 9장 앞쪽~뒤쪽, 성종 10년 6월 5일(경인)]

qín gōng ㄑㄧㄣˊ ㄍㄨㄙ
芹宫 
《诗·鲁颂·泮水》:“思乐泮水,薄采其芹。” 朱熹 集传:“泮水,泮宫之水也。诸侯之学,乡射之宫,谓之泮宫。”后因以“芹宫”指学宫、学校。 明 无名氏 《鸣凤记·邹林游学》:“俊髦虽育芹宫,桃李未荣上苑。” 清 王蓉生 《<锄经书舍零墨>序》:“ 式权 茂才,家居笋里,名噪芹宫。”

- 네이버 사전과 중국 사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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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클립] Special Knowledge (263) 중국어 인증시험 국문/중문/어학외

[뉴스 클립] Special Knowledge (263) 중국어 인증시험

[중앙일보] 입력 2011.03.22 00:00 / 수정 2011.03.22 09:08

신HSK, 쓰기·말하기 능력 테스트 … BCT, 비즈니스 중국어 실력에 초점

“당신 선조가 세자의 교육을 맡던 당시 마침 중국 사신이 왔는데 통역이 미처 오지 못했다. 이에 그가 중국어와 우리말로 막힘 없이 통역하자 사신이 ‘해동(海東) 학사가 중국말도 잘 아는군요’라고 말했다. 이는 이제까지 미담이 되고 있는데 지금은 한학(漢學)이 조정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조선 22대 왕 정조(正祖)는 대신들의 중국어 경시 풍조를 이렇게 한탄했다(『홍제전서(弘齋全書)』 166권). 당시와 달리 현재 열기를 더해가는 국내 중국어 학습 붐에 맞춰 각종 중국어 인증시험의 이모저모를 살폈다.
신경진 중국연구소 연구원

터줏대감 HSK의 변신 … 구어 중심으로
미·중 G2 시대를 맞아 영어는 물론 중국어를 배우려는 열기가 뜨겁다. 서울 대치초등학교가 마련한 방과후 교실 HSK 준비반에서 초등학생들이 중국인 선생님의 지도에 맞춰 시험준비에 열심이다. [김태성 기자]

지난 18일 오후 서울 국립국악원 대회의실. 신HSK(新漢語水平考試의 약칭) 시행 1주년을 기념해 ‘신HSK 실시와 중국어 교육의 발전 방향’을 주제로 한 한·중 국제포럼이 성황리에 열렸다. 서울공자아카데미가 주최하고, 한국HSK실시위원회가 주관하며 주한중국대사관과 중앙일보사가 후원한 이날 포럼에서는 현재 전 세계 70개국 292곳에서 시행되는 HSK의 변신이 주된 이슈였다.

한국외국어대 중국학부 박흥수 교수는 “기존 HSK가 영어의 TOEFL을 기반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어법을 지나치게 강조한 반면 작문과 구어 능력은 측정할 수 없는 한계를 갖고 있었다”며 “이를 보완한 신HSK는 실용성과 쓰기·말하기 능력을 테스트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고 말했다.
지난 18일 서울 국립국악원에서 열린 ‘신HSK실시1주년기념한중문화논단’에 참석한 장신썬(張 森·장흠삼) 주한중국대사가 축사를 하고 있다. [신경진 기자]HSK는 중국어 인증시험 분야의 터줏대감이다. 이는 국내 중국어학시장에서 쉽게 확인된다. 검색포털인 네이버 이용자들이 ‘HSK’를 검색하는 횟수는 월평균 4만4454건. ‘중국’을 검색하는 횟수 7만9208건보다는 적지만, ‘중국어’ 검색 횟수인 2만3668건보다는 월등히 많다. 한국에서 ‘중국어 시험=HSK’로 인식되고 있다는 증거다. 그뿐 아니라 포털 사이트 다음의 ‘중국어 시험정보’ 카페(cafe.daum.net/hskkorea)는 회원 수 18만 명을 자랑하는 대형 커뮤니티다. 지난해 1년간 전 세계에서 HSK를 응시한 인원이 12만여 명인 것과 비교할 때 한국의 HSK 열기를 쉽게 알 수 있다. 이 카페에는 초보자부터 최고 등급인 신HSK 6등급을 준비하는 수험생까지 수준별로 각종 시험 노하우가 가득하다. 특히 최근에는 스마트폰 열풍에 맞춰 각종 중국어 학습 애플리케이션 정보도 속속 올라오고 있다. 또 한국HSK실시위원회의 홈페이지(www.hsk.or.kr)에도 신HSK의 출제 유형 및 각종 학습자료가 다양하게 갖춰져 있어 수험생들의 필수 순례 사이트가 된 지 오래다.

HSK는 역사 또한 길다. 중국에서는 1988년 첫 시험이 치러졌다. 한국에서는 93년 9월 첫 시험이 실시됐다. 421명이 응시한 가운데 73.6%인 310명이 합격증서를 받았다. 지난 한 해 한국 내 HSK 응시자는 5만3000여 명. 전 세계 응시자의 절반 정도를 차지했다.

HSK의 변신은 수험생들의 큰 관심거리다. 지난 13일 신HSK 6급 시험을 치른 중국 유학생 김보연(24·푸단대 3년)씨는 “구HSK와 비교할 때 신HSK는 어휘량과 단어가 더 쉬워진 느낌”이라며 “작문과 듣기 문항도 실용성을 강조한 문제가 많았지만, 난이도가 높은 문항이 간혹 있어 전반적으로 시간이 촉박했다”고 말했다.

신HSK는 TOEFL, BCT는 TOEIC인 셈

지난 1월 미국을 국빈 방문한 후진타오(胡錦濤·호금도) 중국 국가주석은 미국에 처음으로 세워진 시카고의 공자학원을 찾았다. 공자학원은 중국 국가기관인 국가한어국제보급영도소조판공실(약칭 한판·漢辦)이 전 세계에 한어를 보급하기 위해 세운 기구다. 한판은 신HSK와 BCT(비즈니스 중국어 시험·商務漢語考試의 약칭)를 주관한다. 신HSK가 영어의 TOEFL과 비슷하다면, BCT는 TOEIC인 셈이다.

BCT는 회사의 각종 업무, 기획, 회의, 생활, 계획 등 일상 생활과 비즈니스 상황에 필요한 중국어 능력을 측정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회사 경험이 없는 일반 학생이 준비하기에는 쉽지 않지만 기업의 필요에는 꼭 맞아떨어진다. 이 때문에 BCT를 채택하는 국내 기업의 숫자도 빠르게 늘고 있다. 삼성그룹 전 계열사가 지난해 신HSK대신 BCT만을 신입과 경력 채용의 인증시험으로 채택했다. 이에 따라 취업준비생들의 관심도 부쩍 늘어났다. 중국 유학을 준비하는 수험생이 아니라면 BCT로 충분하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BCT 고득점의 비결은 무엇일까. 전직 중국어 강사 선우경선(30)씨는 “우리 주위에 널린 여러 기회를 활용할 것”을 제안한다. 7만여 명에 이르는 국내 중국 유학생에게 한발 다가가 살아있는 중국어를 접하라는 이야기다. 또 중국 관광객을 위해 마련된 각종 중국어 팸플릿도 살아있는 BCT 교과서라고 말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정보를 검증된 중국어로 만들어놓은 실용 중국어 수험서인 셈이다. 그 가운데 한국관광공사에서 중국 자유여행객들을 위해 만든 ‘싱얼이와 함께하는 한국자유여행(chinese.visitkorea.or.kr/e_book/ecatalog.jsp?Dir=102)’은 좋은 자료다. 그 외에도 중국 인터넷의 각종 자료가 딱딱한 수험서보다 살아있는 중국어와 익숙해지는 것을 도와주는 실용 중국어 교재들이다. BCT 고득점의 지름길이 멀리 있지 않다는 이야기다.

그 밖의 중국어 인증시험 뭐가 있나

우리나라 대학에 설치된 중국 관련 학과는 모두 167개. 미국·영어 관련 학과(155개), 일본 관련 학과(112개)보다 많다(2009년 교육과학기술부 자료). 중국 전공자들이 홍수를 이루고 있는 셈이다. 그만큼 중국어 실력을 검증받고자 하는 필요가 높아졌다. 이에 호응하듯 CPT(중국어 능력시험·Chinese Proficiency Test), FLEX(Foreign Language EXamination), TOCFL(華語文能力測驗考試·Test of Chinese as a Foreign Language) 등 각종 중국어 인증시험이 춘추전국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CPT는 일상 생활 용어 위주로 시행돼왔으나 HSK의 변신으로 입지가 약해졌다. 이에 CPT는 말하기와 쓰기를 보강해 2012년 신CPT로의 변신을 선언했다. FLEX는 한국외국어대가 독자 개발해 99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국산 외국어 인증시험이다. 듣기·읽기·말하기와 쓰기 세 영역으로 나누어 치러지는 FLEX는 한국인의 특징에 맞춰 개발됐다. 난이도가 비교적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TOCFL은 대만 교육부가 주관하는 공인 시험이다. TOCFL은 대만의 중국어를 평가한다. 인지도는 낮지만 대만 유학을 계획하는 이들에게 필수인 시험이다.

한국 HSK의 산파 이충양 교수
고려대 이충양(65·사진) 교수는 2004년 서울 강남에 전 세계 제1호 공자학원을 유치하고, HSK의 한국 도입과 정착에 기여하는 등 한국 HSK의 산파역을 맡았다. 이에 중국 정부는 2003년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언어문화우의(友誼)훈장’을 이 교수에게 수여했다. 한국 최초로 대만의 주음부호(注音符號) 대신 중국어 병음을 위주로 한 중국어 대학 교재를 펴냈고, HSK를 한국에 선도적으로 보급하는 등 한·중 문화 교류에 기여한 공로를 중국 정부가 인정한 것이다.

서울대 중문과를 졸업하고 대만과 프랑스에서 석·박사 학위를 딴 이 교수의 논문 주제는 ‘마오쩌둥의 문예사상’. 서슬 퍼런 80년대 초반 ‘빨갱이’ 소리를 들으며 적성국 언어를 연구했다. 이 덕분에 92년 한·중 수교 이전부터 양국 간 막후 소통 채널 역할을 맡았다.

이 교수는 지난해 초 한반도와 관련해 중국인이 남긴 한시(漢詩)와 우리 선조가 중국인과 교류하면서 남긴 시들을 한데 모아 『고대 한·중 교유시』를 펴냈다. 도합 162편의 시 가운데에는 신라왕에게 보내는 당(唐) 현종의 시를 비롯해 신라 혜초(慧超·704~787)와 최치원(崔致遠)의 여러 시가 포함됐다. 모두 한국과 중국의 오랜 문화 교류의 역사를 웅변하는 증거다.

“지금까지 뿌린 씨앗이 싹터 튼실한 ‘한·중 우호’라는 결실을 거두길 바란다”는 이충양 교수는 지난해 북한의 도발로 한때 한·중 양국 관계가 경색된 것이 안타깝다고 말한다. 중국의 한국인 유학생과 국내 중국어 학습자 숫자는 세계 넘버 원이다. 이를 우리의 경쟁력으로 삼아 중국과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를 찾아야 할 때라고 이 교수는 강조했다.


*독자와 함께 만듭니다 뉴스클립은 시사뉴스를 바탕으로 만드는 지식 창고이자 상식 백과사전입니다. 뉴스와 관련해 궁금한 점이 있으면 e-메일로 알려주십시오. 뉴스클립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newscli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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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명구 176] 여력(餘力) 동양학/상식백과



- 백 일흔 여섯 번째 이야기
2012년 1월 19일 (목)


여력(餘力)

1년에는 1년의 여력이,
1월에는 1월의 여력이,
1일에는 1일의 여력이 있다.
一年有一年之餘力 一月有一月之餘力 一日有一日之餘力
일년유일년지여력 일월유일월지여력 일일유일일지여력

- 기우만(奇宇萬 1846~1916) <여력설(餘力說)> 《송사집(松沙集)》


위의 글은 구한말의 의병장이었던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 선생이 친구의 아들에게 써서 준 글에 나오는 말입니다. 친구의 아들은 집안 건사하고 빈객 접대하느라 거의 여력이 없었습니다. 송사는 이 말을 해서 그를 더욱 독려하였습니다.
현대인은 바쁩니다. 직장에 나와 일을 해야 하고 적당한 교제도 유지해야 하고 집에 돌아가서도 집안일을 돌봐야 합니다. 휴일에도 휴일 나름의 할 일이 있습니다. 웬만해서는 여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1년의 여력만 있다면, 한 달의 여력만 있다면 어떤 일을 해볼 텐데 하고 아쉬워합니다. 그러나 이런 여력은 아무리 기다려도 쉽사리 생기지 않습니다.
위의 글에서 1년의 여력이니 1월의 여력이니 한 것은 그 기간 만큼의 뭉텅이 시간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어떤 시간이든 찾아보면 그 시간에서 얻을 수 있는 여력이 있기 마련이라는 말입니다. 이 말에 비춰 보면, 푸념처럼 늘어놓는 ‘여력이 없어서’는 여력을 찾고 모아 쓰지 못한다는 말과 같습니다. 그동안 여력이 없다는 핑계로 미루기만 했던 일이 있다면 이참에 한번 여력을 찾고 모아서 일을 시작해보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글쓴이 : 오재환(한국고전번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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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34) 상수학 대가, 소강절 아들부터 9대손 앞날까지 동양학/상식백과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34) 상수학 대가, 소강절 아들부터 9대손 앞날까지 손금보듯 신들린 점괘 적중률… 그의 정체는?

결혼 첫날밤, 소강절은 부인을 재워놓고 밤새 점을 치고 있었다. 그가 궁금했던 건 이 첫날밤 행사로 자식이 생겼을까 하는 것. 점을 쳐보니 과연 아들이 들어섰다는 점괘가 나왔다. 내친김에 손자와 그 다음 후손들의 앞날까지 점을 쳤다. 그러던 중, 9대손에 이르러 불길한 점괘가 나왔다. 9대손이 역적 누명을 쓰고 죽을 운명이었던 것이다. 세월이 흘러 소강절은 임종을 앞두고 유품 하나를 남겼다. “이것을 9대손에게 물려주고 집안에 큰일이 생기면 풀어보게 하라.”는 유언과 함께.
▲ 소강절 초상화

●9대손의 목숨을 구한 점괘

300년 후, 소강절의 9대손은 정말 역적 누명을 쓰고 멸문지화를 당할 처지에 놓였다. 그는 9대조 할아버지의 유품을 열어 볼 때가 되었음을 직감했고, 드디어 보자기를 풀었다. 그 안에는 “지체하지 말고 이 함을 형조상서에게 전하라.”는 메시지가 있었다.

그는 그 길로 형조상서를 찾아 갔다. 형조상서는 300년 전 대학자인 소강절의 유품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황급히 나와 예를 다해 유품을 받았다. 그런데 그가 유품을 받기 위해 마당에 내려서자마자, 서까래가 내려앉으며 집이 무너지고 말았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더 충격적인 것은 가져온 함 속에 있었던 소강절의 편지 내용이었다. 거기엔 “당신이 대들보에 깔려 죽었을 목숨을 내가 구해주었으니, 당신은 나의 9대손을 구해 주시오.”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상서는 그 길로 재수사를 명했고, 9대손의 무죄를 입증해 주었다.

9대손의 운명까지 예측할 정도로 그의 점복술은 그야말로 최고 경지였다. 소강절의 생애에 관해선 기록이 별로 남아 있지 않고, 대신 이 같은 신비한 얘기들이 많이 알려져 있다. 그런 기막힌 예지력 때문에 그는 신비한 점쟁이의 대명사처럼 취급되기도 한다.

그러나 소강절은 수리(數理)를 성리학적으로 완성한 상수학(象數學)의 대가이다. 그의 예지력은 영감이나 직감이 아닌 바로 ‘수(數)의 이치’에서 나오는 것이다.

●숫자로 천지(天地)의 이치를 헤아리다

박근혜 “창피한줄 아셔야지” 노기 폭발하…세계최강 北폭풍부대 맞설 정예군단 뜬다육군, 60시간 연속 잠안재우는 훈련 논란전두환 지은 ‘현대판 아방궁’ 내부 살펴보…中 불법어선 막는 해상특수기동대 공채해보…연금복권 1등 당첨자 분석하니 놀라운 결과…소강절(邵康節·1011~1077)은 북송 시대의 유학자이자 시인으로, 북송5자(주렴계, 소강절, 장재, 정호, 정이)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입신양명의 꿈을 키웠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과거를 준비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옛 사람들은 시간을 뛰어넘어 더 옛날의 사람과도 소통하였는데, 나는 지금 내 주위 사방(四方)에도 못 미치는구나.”하며, 집을 떠나 천하를 떠돌아 다녔다. 그리고 돌아와서는 “도(道)가 여기에 있다.”고 말한 후, 다시 나가지 않았고 더 이상 과거공부도 하지 않았다.

진정한 소통은 입신양명 같은 외적 확대가 아니라 우주와 직접 연결되는 내면의 확장이라고 깨달은 것일까.

이 무렵 이지재가 소강절이 학문을 즐긴다는 소문을 듣고 그를 방문했다. 이지재는 주렴계의 스승인 목수의 제자로 고문에 정통한 학자이자 관리였다. 이지재는 소강절에게 물리(物理)와 성명(性命) 공부를 권했다. 뜻이 깊으면 그 방면에 반드시 스승이 나타난다고 했던가.

그런데 소강절의 경우는 한 술 더 떠서 스승이 제 발로 찾아와 스승 되기를 청했다. 이때부터 소강절은 춘추를 배우고 역학(易學)을 전수받았다. 이지재는 그의 잠재력과 학문적 그릇을 꿰뚫어 보았다. 훗날 소강절의 사상이 주자학(신유학)의 사상적 기틀이 된 것을 보면 이지재의 안목도 대단하다고 하겠다.

소강절은 이지재로부터 도교의 연단술에 운용되던 선천도(先天圖)를 전해 받았고, 그것을 재해석하여 ‘선천역학’이라는 역학의 새로운 해석체계를 세웠다. 이 이론의 핵심은 ‘가일배법’(加一倍法)이라는 단순한 원리에서 시작된다.

가일배법은 하나가 둘로 나뉘는 법칙으로 2 0, 2 1, 2 2, 2 3… 2 n식의 배수로 진행된다. 이렇게 두 배로 분화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만물생성의 이치라는 것이다.

이 중에서 소강절은 숫자 ‘4’에 주목했다. 그가 생각하기에 역사는 ‘4’라는 수의 변천과 순환일 따름이다. ‘춘·하·추·동’과 ‘역·서·시·춘추’로부터 시작된 하늘과 인간의 네 국면은 그 순서대로 생(生; 낳고), 장(長; 자라고), 수(收; 수렴하고), 장(藏; 저장한다)하는 사이클을 가지고 2배수씩 분할된다. 그렇게 분할되어 낳은 것 중에는 ‘인·의·예·지’ 같은 윤리적인 이치도 있고, ‘문왕·무왕·주공·소공’ 같은 역사적 인물도 포함된다.

이런 식으로 확장해 가면 우주만물과 그 시공간을 모두 헤아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생장수장의 운명적 리듬을 통해 만물의 운명도 예측할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소강절의 대표 이론인 원회운세론의 ‘원(元)·회(會)·운(運)·세(世)’는 우주의 시간단위로서 이것은 ‘연·월·일·시’의 주기성과 통한다. 즉, 원(元=12회)은 우주의 1년이고 지구의 시간으로는 12만 9600년에 해당하고, 회(會=30운)는 우주의 한 달이며 지구시간으로는 1만 800년에 해당한다.

그리고 운(運=12세)은 우주의 하루로서 지구시간으로 360년이고, 세(世)는 우주의 한 시간, 지구시간으로는 30년이다. 이로써 인류를 포함한 만물의 역사는 ‘원회운세’ 안에서 피할 수 없는 준칙을 갖게 되었고, 천지(天地)와 인간은 같은 패턴의 시간성 안에서 물리와 생리를 연결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원회운세와 더불어 관물내편과 관물외편 그리고 성음율려를 더해 대작 ‘황극경세서’(皇極經世書)가 완성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예지력은 ‘초월적 능력’이라기보다, ‘숫자’와 숫자에 연결된 이치를 통해 합리적이고 객관적으로 사물을 관찰한 결과인 것이다. 그런데 사물의 관찰, 즉 관물(觀物)이 객관적이기 위해서는 편견의 주체인 ‘나’의 판단을 소거해야 한다. 그래서 소강절은 ‘나로써 사물을 보(以我觀物)’지 않고, ‘사물로써 사물을 보기(以物觀物)’를 강조한다.

결국, 소강절에게 관물은 주체를 만물 속에 깃들게 하는 동시에 만물이 스스로의 이치를 말하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나’는 우주만물이 되고, 내 마음의 움직임은 곧 천지자연의 변화와 다르지 않다. 이를 일컬어 ‘심법’(心法)이라 말한다. 그러므로 수의 이치를 꿰고 마음의 변화를 읽으면 만사를 알 수 있다. 이것이 그의 예지력의 원천인 셈이다.

“몸은 천지 뒤에 태어났지만 마음은 천지가 생기기 전부터 있었네. 천지도 나로부터 나오는데 다른 것은 말해 무엇하리!”
▲ 소강절이 집필한 ‘매화역수’.
●천명(天命)을 깨달은 자의 자유

그러나 그는 이 앎의 위험성을 경계했다. 만일 “수를 써서 지름길로 가려는 것은 하늘의 이치를 왜곡”하는 것이고 그렇게 “억지로 취해서 반드시 얻어내려 하면 화와 근심이 따르게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욕에 머물러 “요행을 바라는 것은 천명을 거스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문을 하고 마음을 수양하는 일을 올바르게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 올바름이 바로 도가가 유가의 수양과 만나는 길을 열었으며, 신유학의 기틀로 작용하였다. 이것이 성리학의 토대인 북송5자 중에 소강절이 들어가게 된 연유다.

그는 인생의 후반기를 뤄양(陽)에서 살면서 당대를 주름잡던 사상가인 사마광, 장재, 정명도, 정이천과 가깝게 지냈다. 그러나 그들과 달리 그는 관직에 나가지 않았다. 그래서 평생 가난하게 살았지만 그의 몸과 사유는 그만큼 자유로웠다. 스스로 ‘유가’임을 선언했지만 다른 북송의 현인들과 달리 불교나 도교에 적대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도교의 이론을 잘 활용했고, 또한 그의 시 중에는 ‘불가의 가르침을 배우며’라는 시가 있을 정도로 유·불·도 사이를 자유롭게 노닐었다.

무엇보다 “학문이 즐거움에 이르지 않으면 학문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그의 말이나, 정명도가 쓴 그의 묘비명, 즉 ‘그는 편안했을뿐더러 이루기도 했다.’는 구절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천명을 안다는 것은 인생역전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앎 그 자체가 삶이자 자유였다. 때문에 그의 길은 늘 사방으로 열려 있었다.

“눈앞의 길은 모름지기 널따랗게 만들어야 하느니, 길이 좁으면 자연 몸을 둘 곳이 없네. 하물며 사람들을 다니게 하는데 있어서는 어떻겠는가!”

안도균 감이당 연구원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1112102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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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별자리는 유불선 합치된 종교관”<세계일보> 동양학/상식백과

“별자리는 유불선 합치된 종교관”<세계일보>입력 2012.01.10
"제주도에서나 보이는 ‘남극노인성’은 무병장수를 비는 별자리입니다. 세종대왕은 천문관을 서귀포로 보내 남극노인성을 보고 오라고 했습니다. 남극노인성을 보면 나라가 평안해지고 무병장수한다는 사실을 믿은 것이지요.”

‘별자리 전문가’로 통하는 윤상철(52·사진)씨는 요즘 주역 강의하랴, 서울 종로구 수운회관 인근 부남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세종대왕이 만난 우리 별자리와 그림전’에서 별자리 설명하랴 눈코뜰새가 없다. 회계학과 출신으로 샐러리맨 생활 도중 만난 주역 모임에서 우연히 접한 조선시대 천문도에 대한 호기심이 별자리처럼 그의 운명으로 다가왔다. 그가 중국과 우리나라의 옛 천문 자료를 번역하고 해석하느라 보낸 세월만 사반세기, 외로운 세월이었고 외로운 연구는 지금도 진행형이다.

주역의 대가인 대산 김석진 옹의 제자인 윤씨는 그동안 중국 송대의 유학자 소강절의 역작 ‘황극경세’를 완역했고, 조선 세종 당시 천문 설명서인 천문류초(天文類秒)를 최초로 통번역했다. 최근에는 ‘세종대왕이 만난 우리별자리’ 3권을 출간해 별자리 알리기에도 매진하고 있다. 이제 그는 기상청 산하 국가기상위성센터와도 별자리 프로젝트 수행 이야기가 오갈 정도의 독보적인 천문 전문가로 우뚝 섰다.

지난 8일 오후 부남미술관에서 만난 윤씨는 “조선은 유교를 국교로 택했지만, 궁중 안에서는 불교를 믿었고, 도교식으로 별자리에 무병장수를 기원하기도 했다”면서 “이는 유불선이 합치된 종교관”이라며 별자리 신앙 이야기를 풀기 시작했다.

“북두칠성은 죽음을 관장하는 별입니다. 제갈공명이 북두성에게 빌었듯이 목숨을 연장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칠성에게 빌었죠. 또 죽으면 관 바닥에 일곱 개의 구멍이 뚫린 칠성판을 넣고 그 위에 시신을 눕히는 것도 북두칠성께 잘 보살펴 달라는 뜻입니다.”

북두칠성에 담긴 영혼과 환생 이야기는 더욱 흥미롭다.

“사람이 죽으면 북두칠성이 영혼을 인도해서 28수(별자리) 중 하나인 귀수(鬼宿)로 보냅니다. 그래서 귀수 안에 시체 기운의 모임이라는 뜻의 적시기(積尸氣)라는 별이 있는 것이죠. 죽은 영혼들이 이곳에 있다가 남두육성이 다시 살려서 세상에 내보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새 생명을 소원할 때는 남두육성에게 빕니다.”

도교나 불교에서도 별자리를 중시했다. 윤씨는 “특히 북극성을 불교에서는 치성광여래(熾盛光如來), 도교에서는 자미대제(紫微大帝), 인도의 북두만다라에서는 묘견보살(妙見菩薩)이라고 불렀다”고 했다.

“도교에서는 태상삼관북두진경(太上三官北斗眞經) 등을 통해 북두주(北斗呪) 28수주(二十八宿呪) 등을 외면서 무병장수를 빌고 기우제를 지냈습니다. 불교에서는 치성광여래는 물론 북두칠성에 대한 신앙을 탱화로 표현하여 칠성각에 모셨습니다. 칠월칠석에는 칠성님(칠성원군, 칠성여래)에 대한 재(齋)를 올리며 집안의 무병장수를 기원했습니다.”

그는 별자리 신앙에 대해 “길흉화복을 살핌으로써 미래의 화를 미리 조심한다는 기복적인 성격이 강하다”며 “15세기 유학자 매월당 김시습의 견해를 음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별을 존경하는 것은 예(禮)이나 별에 제사지내는 것은 예가 아니다. 별을 존경한다는 것은 별 등의 변화를 살펴서 인간으로서 움직여야 할 때를 잃지 않고자 함이다.”(매월당집)

윤씨는 “세종대왕 당시의 별자리 연구 수준은 서양보다 200여년 앞선 것”이라며 “서구식 별자리 이야기에 익숙해진 지금의 현실이 안타깝다”고 했다. 별자리 윷놀이, 자기 별자리 찾기 등을 체험할 수 있는 ‘세종대왕이 만난 우리별자리와 그림전’은 부남미술관에서 16일까지 열린다. (02)720-0369

신동주 기자 range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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